26년 전 일본에서 가장 신기했던 것,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까마귀
26년 전 일본에 처음 갔을 때였다. 낯선 일본 생활에서 신기했던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까마귀’였다.
한국에서 까마귀라고 하면 왠지 어둡고 음침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시골이나 산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새라는 느낌도 강했다. 그런데 일본에서 만난 까마귀는 내가 알고 있던 까마귀와는 상당히 달랐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사람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일본의 까마귀
더 재미있는 것은 일본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물론 까마귀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까마귀 자체를 불길하거나 흉한 존재로만 생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도시의 풍경 속에 까마귀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당시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도쿄의 거리에서 까마귀가 전봇대나 건물 위, 가로수 등에 앉아 있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아침이 되면 도심 곳곳에서 까마귀가 날아다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신기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도 일본 생활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도시화가 까마귀를 키웠다
일본의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까마귀는 우리나라 농촌에서 흔히 보던 작은 까마귀와는 종류와 생태가 달랐다. 특히 일본 도심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몸집이 크고 부리가 굵은 큰부리까마귀였다. 몸길이가 최대 60cm 정도에 이를 만큼 덩치가 크다 보니 실제로 가까이에서 보면 상당히 위압적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인간의 도시화와 환경 변화가 오히려 이 까마귀들에게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었다는 점이다. 도시에는 사람이 많고 음식물도 많다. 특히 음식점과 가정에서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는 까마귀에게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먹이가 되었다.
사람에게는 처리해야 할 쓰레기였지만 까마귀에게는 풍부한 먹이였던 셈이다. 결국 인간이 만든 도시가 까마귀에게 새로운 서식 환경을 제공한 것이다.
아침이면 긴자와 신주쿠로 모여드는 까마귀
아침 일찍 도심으로 이동하다 보면 까마귀들이 한꺼번에 날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긴자(銀座)나 신주쿠(新宿) 같은 도쿄의 대표적인 번화가에도 까마귀가 나타났다. 고층빌딩과 자동차,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까마귀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모습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상당히 이색적이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 어떻게 까마귀가 이렇게 많을 수 있을까?’ 당시에는 그저 신기하게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배경에는 음식물 쓰레기 문제가 있었다.
먹이가 풍부하니 까마귀가 도시로 몰려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도쿄의 까마귀 문제는 단순한 새의 개체수 문제가 아니었다. 쓰레기봉투를 찢어 음식물을 꺼내 먹거나, 거리와 주거지역을 더럽히고, 사람을 공격하는 사례까지 발생하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일본도 까마귀와 전쟁을 벌였다
도쿄를 비롯한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는 2000년대 전후부터 까마귀 개체수를 줄이기 위한 포획과 쓰레기 관리 등의 대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당시 도쿄에서는 까마귀 개체수를 크게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기도 했다. 단순히 까마귀를 잡는 것만이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를 제대로 관리하고 까마귀가 먹이에 접근하기 어렵게 만드는 방법도 함께 추진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까마귀를 아무리 많이 잡아도 도시에 먹이가 계속 남아 있다면 다른 까마귀가 다시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인간과 야생동물이 도시에서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와도 연결된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까마귀가 신의 사자였다
일본에서 까마귀는 단순히 골칫거리인 새가 아니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고대 역사서인 『고지키(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야타가라스(八咫烏)’라는 특별한 까마귀가 등장한다. 야타가라스는 세 개의 다리를 가진 신성한 까마귀로 알려져 있다. 일본 신화에서 신의 뜻을 전달하거나 사람을 올바른 길로 안내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에게도 익숙한 ‘삼족오(三足烏)’와 연결된다.
태양 속에 산다고 전해지는 세 발 달린 까마귀에 대한 신화는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며, 한반도에서도 삼족오와 관련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그러니 일본에서 까마귀가 단순히 불길한 새로만 인식되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일본축구협회에도 등장하는 세 발 까마귀
바로 일본축구협회의 상징이다. 일본축구협회의 엠블럼에는 세 발 달린 까마귀인 야타가라스가 등장한다. 까마귀가 축구공을 잡고 있는 모습이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꽤 의외였다. 한국에서 까마귀라고 하면 여전히 어두운 이미지가 강한데, 일본에서는 고대 신화 속에서 길을 안내하는 신성한 존재가 되었고, 오늘날에는 일본 축구를 대표하는 상징 가운데 하나로까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 일본인들이 모두 까마귀를 숭배한다고 볼 수는 없다. 도시에서는 까마귀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도 많고, 개체수를 줄이기 위한 행정적인 노력도 계속되어 왔다. 그럼에도 까마귀가 일본 문화 속에서 오랫동안 특별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는 사실은 분명 흥미롭다.
26년이 지나 다시 생각해보는 일본의 까마귀
사람과 까마귀가 너무 가까이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에는 그저 ‘일본에는 왜 이렇게 까마귀가 많을까?’라는 단순한 의문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까마귀가 일본 사회에서 가진 의미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음식물 쓰레기를 찾아 도시를 누비는 골칫거리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대 신화에서 신의 사자로 등장하는 신성한 존재다. 도시화와 환경 변화 때문에 번성한 야생동물이면서 동시에 수천 년 전부터 일본인의 상상력 속에 자리 잡은 문화적 상징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일본을 떠올리면 도쿄의 빌딩 숲과 함께 그 위를 날아다니던 검은 까마귀의 모습이 떠오른다. 여행을 하면서 그 나라의 유명한 관광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평범한 새 한 마리가 오히려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26년 전 일본에서 만났던 까마귀가 바로 그랬다. 그때는 단순히 신기했던 까마귀 한 마리였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 까마귀 한 마리 안에 일본의 도시문화와 음식물 쓰레기 문제, 자연과 인간의 공존, 그리고 고대 신화까지 모두 들어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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