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왜 대형 관광버스를 도심에서 밀어낼까

이탈리아 관광정책 4편


로마는 왜 대형 관광버스를 도심에서 밀어낼까


로마는 조금 특별한 도시입니다.

피렌체처럼 도시 전체가 르네상스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고, 베네치아처럼 좁은 골목과 수많은 관광객으로 유명하며, 아말피처럼 도로 자체가 관광의 장애물이 되는 곳도 아닙니다.

로마는 훨씬 큽니다.
그런데도 관광정책의 방향은 비슷합니다.
대형 관광버스를 역사도심 깊숙한 곳까지 자유롭게 들여보내지 않는 것입니다.
로마를 여행하면서 콜로세움이나 포로 로마노, 트레비 분수 주변을 다니다 보면 대형 관광버스가 관광지 바로 앞을 가득 메우는 모습을 예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 로마에서는 관광버스가 마음대로 도심을 돌아다닐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로마에는 관광버스를 위한 별도의 ZTL이 있다



로마의 관광버스 정책을 이해하려면 ZTL BUS를 알아야 합니다.
ZTL은 ‘Zona a Traffico Limitato’, 즉 교통제한구역이라는 뜻입니다.
로마는 관광버스를 위한 제한구역을 크게 ZTL BUS A, B, C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공식 교통기관인 Roma Mobilità에 따르면 ZTL BUS C는 로마 중심부를 둘러싸는 구역이며, 관광버스의 진입이 원칙적으로 금지됩니다.
물론 특별한 조건을 충족해 허가를 받은 경우에는 예외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 원칙은 분명합니다.
대형 관광버스를 로마 역사도심 안으로 자유롭게 들여보내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피렌체에서 봤던 정책과 상당히 닮았습니다.
관광객은 들어오지만 관광버스는 제한하는 것입니다.


왜 로마는 이런 정책을 선택했을까?



로마는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입니다.
콜로세움 주변부터 포로 로마노, 판테온,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도시 중심부에 몰려 있습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 숫자는 엄청납니다.
여기에 로마 시민의 출퇴근 차량과 택시, 배달차량, 대중교통까지 더해집니다.
만약 관광객 수십 명을 태운 대형버스가 관광지 바로 앞까지 자유롭게 들어온다면 도심의 도로는 금세 복잡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관광버스는 일반 승용차보다 크기 때문에 정차 공간도 많이 차지합니다.
관광객을 내려주고 다시 태우는 과정에서 버스가 도로에 정차하면 뒤따르는 차량의 흐름도 막힐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는 관광버스가 중심부에 접근하는 것을 관리하고, 중심부 주변에 관광버스를 위한 주차·정차 공간을 확보하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관광버스를 밖에 세우면 관광객은 어떻게 할까?



관광객에게는 결국 한 가지 선택이 남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불편할 수 있습니다.
특히 패키지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버스가 관광지 바로 앞까지 가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시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상당히 합리적인 방법입니다.
관광객 수십 명을 실은 거대한 차량 하나가 도심으로 들어오는 대신, 관광객들이 여러 방향으로 분산되어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관광객이 걸어가면서 주변 상점에 들어갈 수도 있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수도 있습니다.
도시 전체가 관광객의 이동 공간이 됩니다.
버스 안에서 관광지를 구경하고 관광지 앞에서 내려 사진만 찍고 다시 버스를 타는 관광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입니다.


로마의 관광버스 정책은 단순한 금지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로마가 관광버스를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ZTL BUS에는 여러 구역과 허가제도가 존재하고, 관광버스가 이용할 수 있는 경로와 정차·주차공간도 별도로 운영됩니다.
즉, 로마가 원하는 것은 ‘관광버스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관광버스가 도시의 가장 혼잡한 지역을 점령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관광버스가 필요한 관광산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버스와 관광객의 동선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이 차이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로마는 일반 자동차도 도심을 제한한다



사실 로마의 교통정책을 보면 관광버스만 특별히 불편하게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로마에는 일반 차량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ZTL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2026년 현재 로마 중심부의 ZTL은 특정 시간대에 허가받은 차량만 들어갈 수 있도록 관리되고 있습니다. 로마 교통당국은 중심부와 트리덴테, 트라스테베레 등 여러 지역의 ZTL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즉, 로마의 기본 철학은 관광버스 하나만 통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시 중심부의 자동차 통행 자체를 관리하는 것입니다.
관광객에게는 더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도시 입장에서는 역사도심의 교통량을 줄이고 보행공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관광객이 많은 도시일수록 차량은 줄여야 한다



이탈리아 네 도시를 여행하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관광객이 많은 곳일수록 자동차와 관광버스가 오히려 줄어듭니다.
피렌체에서는 역사도심의 관광교통을 관리합니다.
베네치아에서는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의 그룹 규모를 관리합니다.
아말피에서는 좁은 해안도로를 고려해 대형 차량의 통행을 관리합니다.
그리고 로마에서는 대형 관광버스가 중심부를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ZTL BUS를 운영합니다.
방법은 각각 다르지만 목적은 비슷합니다.
관광객 때문에 도시가 마비되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관광객에게 불편한 정책이 도시에는 도움이 된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이런 정책들이 모두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관광버스에서 내려야 하고, 걸어야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고, 때로는 여러 번 이동수단을 갈아타야 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 관광객이 걷는 거리는 늘어나고, 자동차가 차지하는 공간은 줄어듭니다.
특히 로마처럼 역사유적이 밀집한 곳에서는 보행자가 중심이 되는 것이 관광의 질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콜로세움이나 포로 로마노를 보러 왔는데 관광버스가 사방을 가득 메우고 매연과 경적이 끊이지 않는다면 관광객 자신도 제대로 된 로마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버스에서 내려 걸으면서 고대 유적을 만나고, 골목을 지나 광장으로 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로마 여행의 일부가 됩니다.


‘많이 오는 관광객’보다 ‘오래 지속되는 관광’



이탈리아 관광정책을 네 편으로 나누어 살펴보면서 결국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탈리아의 관광도시들은 관광객을 무조건 많이 받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관광객이 많이 와도 도시가 버틸 수 있어야 합니다.
주민들이 계속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유적이 훼손되지 않아야 합니다.
도로가 마비되지 않아야 합니다.
관광객도 제대로 여행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관광객의 이동을 관리합니다.
피렌체에서는 대형 관광교통을 역사도심에서 관리하고, 베네치아에서는 관광그룹을 25명 이하로 제한합니다. 아말피에서는 좁은 해안도로와 역사도심의 차량 흐름을 관리하고, 로마에서는 관광버스가 중심부를 자유롭게 통과하지 못하도록 ZTL BUS를 운영합니다.
이것은 모두 같은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관광객을 어떻게 더 많이 받을 것인가?”가 아니라 
“관광객이 많이 와도 이 도시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저는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이 차이가 상당히 크게 느껴졌습니다.
관광객에게 조금 불편한 정책이 오히려 관광지를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관광버스가 관광지 바로 앞까지 들어가지 못하면 관광객은 조금 더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역사도심의 교통량이 줄어듭니다.
대규모 관광단을 한꺼번에 이동시키지 않으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립니다.
하지만 좁은 골목과 다리가 관광객으로 막히는 것을 줄일 수 있습니다.
대형버스가 아말피의 좁은 해안도로를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면 이동이 불편합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지역 주민의 도로와 관광객의 도로가 완전히 뒤엉키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습니다.
결국 관광정책은 관광객을 위한 정책이면서 동시에 관광지를 지키기 위한 정책이어야 합니다.
로마의 거리를 걸으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도시 가운데 하나인 로마가 관광객에게 모든 것을 편하게 제공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답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로마가 너무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관광객이 너무 많이 오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강하게 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피렌체, 베네치아, 아말피, 로마.



네 곳은 지형도 다르고 역사도 다르며 관광 형태도 다릅니다.
그런데 관광객이 몰리는 곳을 그냥 방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합니다. 이탈리아에서 배운 관광정책의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좋은 관광도시는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도시가 아니라, 관광객이 많이 찾아와도 여전히 그 도시의 모습과 주민의 일상을 지켜낼 수 있는 도시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나라의 관광도시들도 앞으로는 이 질문을 더 많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관광객을 어떻게 더 많이 받을 것인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관광객이 많이 찾아와도 이 도시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이것이 이탈리아의 관광정책을 직접 경험하면서 제가 얻은 가장 큰 생각이었습니다.




로마 포로로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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