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새겨진 십자가" 성녀 율리아나 팔코니에리 생애와 성체의 기적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 내부에는 많은 조각상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잡아끄는 성스러운 조각상을 보고 귀국후 그 분에 대한 연구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바티칸에서 만난 성녀의 일생을 같이 알아보고자 합니다. 가톨릭 교회의 숨겨진 보석이자, 성체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가득했던 성녀 율리아나 팔코니에리(St. Juliana Falconieri, 1270~1341)의 거룩한 일생과 신앙적 업적에 대해 상세히 정리해 드립니다.


1. 출생과 성장 배경: 가문의 유산을 뛰어넘은 부르심


성녀 율리아나 팔코니에리는 1270년경 이탈리아 피렌체의 매우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귀족 가문인 팔코니에리 집안의 외동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피렌체의 유명한 '성모 영보 바실리카(Santissima Annunziata)' 성당의 건립 기금을 봉헌했을 만큼 신심이 깊은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율리아나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녀는 어머니와 숙부의 보살핌 속에서 자라게 됩니다. 이때 그녀의 영적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이 바로 숙부인 성 알렉시오 팔코니에리(St. Alexius Falconieri)였습니다. 숙부 알렉시오는 가톨릭 역사에서 성모 마리아의 계시를 받아 ‘마리아의 종 수도회(Servite Order)’를 공동 창설한 일곱 성인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러한 거룩한 가정환경 덕분에 율리아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세상의 부귀영화보다는 하느님을 향한 정결과 기도의 삶에 깊은 매력을 느꼈습니다.


2. 세속의 유혹을 뿌리치고 봉헌의 삶으로


율리아나가 장성하자 귀족 가문의 전통에 따라 집안사람들은 그녀를 피렌체의 유력한 가문과 혼인시키려 했습니다. 가문의 명예와 막대한 재산이 걸린 일이었기에 압박이 심했지만, 일찍이 동정(순결)을 지키며 하느님께 삶을 바치기로 서원했던 율리아나는 이 결혼을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그녀의 굳은 신념을 알아본 이는 당시 마리아의 종 수도회의 총장이자 성인이었던 성 필립보 베니시오(St. Philippus Benitius)였습니다. 율리아나는 14세가 되던 해, 그의 영적 지도 아래 공식적으로 세상과의 타협을 끊고 참회와 기도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성 필립보 베니시오로부터 마리아의 종 수도회 ‘제3회(재속 평신도 회 원)’의 첫 수도복을 받았습니다. 이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 20여 년 동안, 그녀는 화려한 귀족의 저택 안에 머물면서도 사실상 엄격한 은수자(숨어서 기도하는 사람)처럼 단식과 자선, 기도에만 전념하는 놀라운 절제력을 보여주었습니다.


3. 주요 업적: '망토 수녀회(Mantellate)'의 창설과 이웃 사랑


1305년 어머니가 선종하자, 율리아나는 마침내 집을 나와 뜻을 같이하는 동료 여성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녀의 가장 큰 외적 업적인 '마리아의 종 수도회 제3회 수녀원'의 시작입니다. 이 공동체의 주된 사명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소외된 이들을 위한 헌신: 거리와 병원, 가정에 방치된 가난한 병자들을 극진히 돌보는 것.
어린 소녀들의 교육: 중세 사회에서 소외되기 쉬웠던 어린 소녀들에게 신앙과 학문을 가르치는 것.

당시 율리아나와 수녀들은 환자들을 더 효율적이고 활동적으로 간호하기 위해, 소매가 짧고 일하기 편한 독특한 형태의 검은 수도복을 입고 그 위에 망토를 두르고 다녔습니다. 피렌체 시민들은 이들의 헌신적인 모습에 감동하여 이들을 '망토 수녀회(Mantellate Sisters)'라는 친근한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율리아나는 극구 사양했으나 동료들의 간청으로 이 수녀회의 초대 원장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말과 엄한 규칙이 아니라, 스스로 가장 낮고 험한 일을 도맡아 하며 자매들에게 겸손과 이웃 사랑의 살아있는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1304년 교황 베네딕토 11세는 이 공동체를 정식 수녀회로 공식 승인하였습니다.


4. 성체 성혈의 기적과 거룩한 선종


성녀 율리아나의 일생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가톨릭 신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사건은 그녀의 임종 때 일어난 '성체의 기적'입니다.
평생에 걸친 가혹한 단식과 고행, 그리고 밤낮없는 간호 봉사로 인해 율리아나는 노년에 심각한 위장 질환(위궤양 및 위염)을 앓게 되었습니다. 71세가 되던 1341년, 그녀는 마침내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위장이 심하게 망가져 어떤 음식도 삼킬 수 없었고 격렬한 구토가 지속되었습니다.
가톨릭 전통에서 신자가 임종하기 전 모시는 마지막 영성체를 '노자 성체(Viaticum)'라고 부르며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율리아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를 간절히 모시고 싶어 했으나, 구토로 인해 성체를 모독하게 될까 봐 사제는 차마 성체를 입에 넣어줄 수 없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율리아나를 보고, 사제는 그녀의 간청에 따라 가슴 위에 하얀 성체포(코포랄)를 깔고 그 위에 성체를 조심스럽게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가슴 위에 올려진 성체가 빛을 내며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체가 사라짐과 동시에 율리아나의 고통스럽던 숨소리가 평온해졌고,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하느님 품으로 선종했습니다.

수녀들이 선종한 그녀의 옷을 벗기고 몸을 씻길 때 또 한 번 놀라운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녀의 왼쪽 가슴 살갗 위에, 방금 전까지 놓여있던 성체의 형상과 그 안에 새겨진 십자가 문양(또는 IHS 문양)이 마치 낙인처럼 또렷하게 박혀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녀의 평생에 걸친 성체 신심과 영적 갈망을 기적을 통해 채워주셨음을 보여주는 징표였습니다.


5. 시성과 현대적 의미: 병자와 임종자의 수호성인


율리아나가 선종한 직후부터 피렌체 시민들과 마리아의 종 수도회는 그녀를 성녀로 공경하기 시작했습니다.

1678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습니다.
1737년 6월 16일: 교황 클레멘스 12세에 의해 정식으로 시성(성인품) 되었으며, 그녀의 축일인 6월 19일은 전 세계 교회의 공경일로 선포되었습니다.

성녀 율리아나 팔코니에리는 오늘날 가톨릭 교회에서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 '임종을 앞둔 이들', 그리고 '간호 봉사자들'의 주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습니다.

그녀의 삶은 단순한 중세의 역사가 아니라, 세상의 부유함 속에서도 더 가치 있는 영원한 것을 선택하는 용기,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헌신,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현존(성체)을 온 삶으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이 있게 전해주고 있습니다.성 율리아나 팔코니에리


성 율리아나 팔코니에리
사진출처 :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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