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폼페이 미이라, 슬픈 유적지 탐방기

 폼페이 탐방기


이탈리아 남부의 강렬한 햇살을 받으며 나폴리에서 기차를 타고 약 40분, 베수비오 화산의 거대한 실루엣이 창밖으로 다가올 때쯤 폼페이 스카비(Pompeii Scavi) 역에 도착했습니다. 서기 79년 8월의 어느 날, 단 하룻밤 만에 지구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비운의 도시. 고대 로마인들의 화려한 휴양지이자 일상이었던 이곳은 역설적이게도 화산재라는 거대한 무덤 속에 갇혀 2,0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유적지 입구를 통과해 마주한 폼페이는 생각보다 훨씬 거대하고 웅장했습니다. 붉은 벽돌과 대리석 기둥이 늘어선 포룸(Forum), 마차 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패인 돌바닥 길, 당장이라도 주인이 돌아와 화덕을 켤 것 같은 빵집과 대중목욕탕까지. 하지만 이 경이로운 고대 도시의 아름다움 속에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슬픈 침묵이 깔려 있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해야 했던 이들의 흔적, '석고 캐스트(Plaster Casts)'라 불리는 희생자들의 모습 때문입니다.


1. 굳어버린 비명, 석고가 된 사람들


​보통 '미이라'라고 하면 이집트의 인위적인 방부 처리 과정을 거친 시신을 떠올리지만, 폼페이의 미이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뜨거운 화산재와 유독가스, 그리고 연이은 쇄설류(pyroclastic flow, 화산 분출 시 고온의 가스와 화산재가 빠르게 흘러내리는 현상)가 도시를 덮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질식하거나 열사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시신은 화산재 속에서 부패해 사라졌고, 그 자리는 텅 빈 공간(유형)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19세기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는 이 빈 공간에 석고를 주입하여 굳히는 획기적인 방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그렇게 흘러 들어간 석고는 2,000년 전 그들이 숨을 거두던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을 날것 그대로 복원해 냈습니다.

​전시장 유리관 속에 누워있는 그들의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 숨이 멎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고대 유물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공포와 마주했던 한 인간의 비명이자 마지막 몸부림이었기 때문입니다.

• ​웅크린 남자: 뜨거운 가스와 화산재를 마시지 않으려 코와 입을 두 손으로 필사적으로 막은 채 웅크린 남자의 석고상 앞에서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잔뜩 움츠러든 어깨와 굳어버린 등근역에서 그가 느꼈을 극한의 공포가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 ​서로를 안은 연인: 무너져 내리는 세상 속에서 서로를 꼭 끌어안고 마지막 숨을 나눴을 두 사람의 석고상은 깊은 슬픔을 자아냅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들이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함께 눈을 감는 것뿐이었을 것입니다.

• ​아이를 안은 어머니: 급박하게 피난 길에 올랐으나 결국 화산재에 발이 묶여 아이를 품에 꼭 안고 쓰러진 어머니의 모습은 모성애라는 숭고한 감정과 함께 가슴 깊은 곳을 울립니다.


​2. 돌바닥 길 위에서 상상하는 그날의 평범했던 아침


​비극적인 석고상들을 뒤로하고 폼페이의 골목길을 걸었습니다. 격자형으로 잘 정돈된 도로 양옆으로는 로마인들이 이용하던 주점(Thermopolium)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카운터에는 따뜻한 음식이나 음료를 담아두었던 둥근 항아리 구멍들이 선명하게 뚫려 있었고, 벽면에는 붉은색으로 화려하게 그려진 벽화들이 여전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일상의 단절이 주는 슬픔


아침에 일어나 상점에 들러 빵을 사고, 목욕탕에서 이웃들과 수다를 떨며, 저녁에는 원형극장에서 공연을 즐겼을 평범한 로마 시민들. 그들에게 서기 79년의 그날 역시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온한 하루의 시작이었을 것입니다. 베수비오 화산이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하늘을 검게 물들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돌멩이(부석)와 섭씨 수백 도에 달하는 뜨거운 가스가 도시를 덮쳤을 때,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가재도구를 챙기느라 골든타임을 놓쳤고, 어떤 이들은 단단한 석조 건물 안이 안전할 것이라 믿고 대피했다가 무너진 지붕에 깔리거나 유독가스에 질식했습니다. 항구로 달려가 배를 타려 했던 이들도 가스 구름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머물던 대저택의 마당, 물을 길어 올리던 공공 우물가, 신들의 조각상이 서 있는 포룸 광장 곳곳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지금은 고요하기만 한 평화로운 유적지 위로, 2,000년 전 비명을 지르며 달리던 사람들의 발소리와 대지를 뒤흔드는 화산의 포효가 겹쳐 들리는 듯한 착각이 일었습니다.


​3.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폼페이가 남긴 교훈


​폼페이 유적지 탐방의 종착지이자 비극의 정점인 '도망자들의 정원(Garden of the Fugitives)'에 다다랐습니다. 도시의 외곽 벽 근처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탈출을 시도하다가 한꺼번에 쓰러져 숨진 13명의 희생자 석고 캐스트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어른부터 어린아이까지, 그들은 마지막 탈출구였던 성문을 코앞에 두고 쓰러졌습니다. 줄지어 쓰러진 그들의 실루엣은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연극의 한 장면처럼 참혹하고 숙연했습니다.

​석양빛이 폼페이의 붉은 벽돌을 붉게 물들일 때 즈음 유적지를 나섰습니다. 멀리 우뚝 솟아 있는 베수비오 화산은 지금도 푸른 하늘 아래 고요하고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저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는 자연이 언제든 인간이 이룩한 문명을 한순간에 집어삼킬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섬뜩하게 다가왔습니다. 폼페이의 미이라들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


​우리가 누리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과 숨결이 얼마나 부서지기 쉽고 소중한 것인지를, 2,000년 전 멈춰 선 그들의 슬픈 몸짓이 웅변하고 있었습니다. 비극의 현장이었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생생한 삶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던 폼페이. 그곳에서 마주한 슬픈 눈물빛의 유산들은 오랫동안 제 마음에 깊은 여운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베수비오산

폼페이 미이라

폼페이의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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