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는 왜 관광객을 25명 이하로 나눌까

 이탈리아 관광정책 2편


베네치아는 왜 관광객을 25명 이하로 나눌까


베네치아를 여행하면서 이상하게 느꼈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관광도시라면 으레 보일 법한 대규모 관광단이 생각보다 눈에 잘 띄지 않았습니다.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관광지 앞에서 깃발을 든 가이드 뒤로 수십 명의 관광객이 줄지어 따라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베네치아에서는 그런 대규모 관광단의 모습이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베네치아의 관광정책을 알아보면서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베네치아는 관광객을 단순히 많이 받는 것이 아니라 관광객이 어떤 규모로 움직이는지까지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베네치아는 관광객이 걷는 것 자체가 교통이다



베네치아에는 자동차가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동차가 도시의 핵심 관광지역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일반적인 도시 구조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배를 타거나 걷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자동차가 없는 대신 베네치아의 골목과 다리가 사실상 도로 역할을 합니다.
산마르코 광장으로 가는 좁은 골목, 작은 다리, 계단, 수상버스 선착장 주변이 모두 관광객의 이동통로가 됩니다.
이런 곳에 50명짜리 관광단이 한꺼번에 움직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이 길을 막습니다.
다리 위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기 위해 멈추면 뒤에서 오는 관광객이 지나가지 못합니다.
좁은 골목에서 단체가 멈추면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도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베네치아에서는 ‘관광객 수’뿐 아니라 관광객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방식 자체가 문제가 됩니다.


25명이라는 숫자


베네치아시는 2024년 8월 1일부터 역사도심과 무라노·부라노·토르첼로 섬에서 가이드 등과 함께 움직이는 관광그룹을 규제하고 있습니다.
현재 핵심적인 기준은 한 그룹의 관광객을 최대 25명으로 제한하는 것입니다.
가이드나 동행자는 일정 조건에서 이 숫자에 포함되지 않지만, 관광객 그룹 자체는 25명을 넘을 수 없습니다. 두 살 이하 어린이는 인원 산정에서 제외됩니다.
제가 여행하면서 ‘왜 베네치아에서는 대규모 관광단이 잘 안 보였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도 바로 이런 정책과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흔히 인터넷에서 ‘베네치아는 가이드 1명당 관광객 10명으로 제한한다’고 알려진 내용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10명이라는 숫자는 그룹의 최대 인원이 아닙니다.


관광객이 10명을 초과하는 그룹을 가이드가 안내할 경우 이어폰 사용이 의무화



관광객이 10명을 초과하는 그룹을 가이드가 안내할 경우 이어폰 사용이 의무화되는 기준입니다. 확성기를 사용하는 것도 제한됩니다.
즉, 베네치아는 관광객을 작은 그룹으로 나누면서 동시에 소음까지 관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확성기까지 금지할까?이 부분이 재미있습니다.
베네치아에서 관광객이 많은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관광객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도시가 반드시 시끄러워질 필요는 없습니다.
가이드가 확성기를 들고 “여러분, 이쪽을 보세요!”라고 소리치고 40~50명의 관광객이 그 뒤를 따라간다면 좁은 베네치아의 골목은 금세 혼잡해집니다.
그래서 베네치아는 10명을 초과하는 관광그룹에서 가이드가 설명할 경우 이어폰 사용을 요구하고, 주변에 혼란과 소음을 유발할 수 있는 확성기 사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관광객에게 설명을 듣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관광객은 설명을 들으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일상을 방해하지 말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다리 위에서 멈추면 안 되는 이유



베네치아의 관광정책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부분이 있습니다.
관광그룹이 보행자 통행을 명백하게 방해하는 장소에서 머무르는 것도 제한됩니다.
특히 다리와 다리로 연결되는 진입로는 주요 관리 대상입니다.
베네치아의 다리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닙니다.
현지 주민에게는 매일 출퇴근하고 장을 보고 이동하는 생활도로입니다.
관광객에게는 ‘사진 찍기 좋은 장소’지만 주민에게는 ‘매일 지나가야 하는 길’인 것입니다.
관광객이 사진을 찍겠다고 다리 한가운데 멈춰버리면 그 뒤의 사람들은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베네치아는 관광객이 관광을 하는 방식까지 관리합니다.


2026년에도 단속은 계속되고 있다



이 정책이 단순히 규정만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베네치아시는 2026년 6월 산마르코 광장 일대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습니다.
목적은 보행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도시의 안전과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규모가 큰 관광그룹이 길을 막거나 통행을 지연시키는 상황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즉, 베네치아는 관광객을 많이 받으면서도 관광객이 도시의 이동 시스템을 압도하지 않도록 계속 관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관광객을 줄이는 것과 관광객을 분산시키는 것은 다르다



베네치아의 정책을 보면 중요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베네치아는 관광객에게 ‘오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최고의 관광도시 가운데 하나인 만큼 관광객을 계속 받아들입니다.
다만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람이 움직이는 것을 막습니다.
50명이 한꺼번에 몰려다니는 대신 25명 이하로 나눕니다.
큰 소리로 설명하는 대신 이어폰을 사용합니다.
다리 위에서 장시간 멈추는 대신 보행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장소에서 설명합니다.
이것은 관광객을 없애는 정책이 아니라 관광객의 밀도를 낮추는 정책입니다.


베네치아가 관광객에게 가르쳐주는 것



베네치아를 걷다 보면 관광객이 도시를 압도하는 순간과 도시가 관광객을 품어주는 순간의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관광객이 적당한 규모로 움직이면 골목도 걸을 만하고 다리도 건널 만합니다.
하지만 수십 명이 한꺼번에 멈춰 서면 그 순간 베네치아의 좁은 공간은 감당하기 어려운 장소가 됩니다.
그래서 베네치아가 선택한 방법은 관광객 자체를 줄이는 것보다 관광객의 행동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상당히 현실적인 관광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광객은 도시의 중요한 경제적 자원입니다.
하지만 주민의 생활과 도시의 이동권도 중요합니다.
관광객이 많아질수록 이 둘의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베네치아는 그 균형을 ‘25명’이라는 구체적인 숫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0명이 넘으면 이어폰을 사용하게 하고, 확성기를 제한하고, 다리와 골목의 보행 흐름까지 관리합니다.
제가 베네치아에서 느꼈던 ‘생각보다 대규모 관광단이 많지 않다’는 인상은 단순한 우연만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관광객을 많이 받되, 관광객이 도시를 점령하지 않도록 하는 것.
이것이 베네치아가 선택한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정책은 다음 여행지인 아말피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베네치아에서는 ‘사람의 숫자’를 관리했다면, 아말피에서는 거대한 차량 자체가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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